4. 다시 태어나도 우리(문창용)
애틋함 그 잡채...❤
낯가리는 방장놈 님의 글
(책 표지 中)
“인상적인 문장을 가져오라면서 책 표지 문장을 가져오셨네요? 책 읽으신 거 맞죠?”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책 맨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운을 남기는 해당 문장은 짐짓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뺏을까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오래된 미래>로 잘 알려진 마을, 라다크 마을에 거주하는 한 소년(앙뚜)과 고승(우르갼)의 이야기입니다. 이 아이는 고승이 환생한 린포체입니다. 고승은 린포체를 보살핍니다. 하지만 한 마을에 린포체 두 명을 모실 수 없습니다. 고승의 본적은 티베트입니다. 그래서 고승은 소년을 티베트로 보내기 위해 함께 3,000킬로미터 대장정을 떠납니다. 맨 마지막 문장은 이 두 사람의 운명을 보여줍니다.
앙뚜와 우르갼은 사이가 애틋합니다. 할아버지와 손주처럼 보이지만 우르갼은 앙뚜를 고승으로 지극정성 모십니다. 고민을 들어주고 걱정해주며 마음 아파하고 매 순간 서로의 안부를 묻고 확인합니다. 고승의 제자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마을은 히말라야 산맥처럼 눈으로 가득 찬 매서운 사막일 뿐입니다. 앙뚜와 우르갼은 무사히 티베트로 향했을까요? 책으로 접하시길 바랍니다. 결말을 찾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애틋함을 느낄지 모릅니다.
책을 읽으며 ‘인연’ 단어를 생각해봅니다. 인과 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옷깃은 사실 스치기 어렵다고 합니다. 옷깃을 스치지 않는 사람들은 인연이 아닐까? 의문이 듭니다.
이 문구는 불교 ‘타생지연’ 고사성어에서 비롯되었다 합니다. 타생지연은 옷깃이 아닌, 소매입니다. 우리말이 틀렸다니! 국립국어원에서는 속담의 구전이니 문제가 없다고 하네요.(“"옷깃만 스쳐도 인연"…옷깃의 유래는?”, SBS뉴스, 2016) 그래도 저는 옷깃보다 “소매만 스쳐도 인연”으로 고쳐 쓰렵니다.
문구 오류와 관련해 과유불급도 잘못됐다 합니다. 이 내용마저 쓰면 내용이 산으로 갈 것 같아 기회가 되면 공유하겠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더라도 의도치 않게 함부로 말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인데 남몰래 품던 이야기를 들추어내곤 합니다. 참 모순적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말하지 않더라도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래도 잘해줘야지. 내가 잘못했지. 한 번 태어난 한 번 만나는 소중한 인연인데.”
여기 모인 분들도 ‘인연’이라고 믿습니다. 이 글처럼 길게 쓸 필요 없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그냥 보기만 하셔도 좋습니다.(가끔 올려주세요. 알기 모르게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독서’라는 비생산적 활동(긴 시간 같은 자세로 앉는 행위)에서 우리는 지식을 채집합니다. 저자의 지혜, 지식을 일방적으로 집어넣는 한 없이 ‘외로운 과정’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글 마칩니다.
제 관련 이야기를 적지 않은 것 같아 첨가합니다. (+ 인연 하면 떠오르는 존재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여의도에 과외를 다녔습니다. 과외 선생님의 지각으로 얼떨결에 시간이 생겼고 한강 공원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물가 근처에 앉아있던 한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죠. 술을 드시는 분이었는데 말끔히 양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양복에 혼술이라. 당시엔 혼술이란 개념도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즈음 총선에서 나름 관심받던 제3 정당 후보였지만 낙선했더군요. 물론 이는 추후 검색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엉겁결에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치 이야기도 꺼내게 됐죠. 그 자리에서 내막을 알게 됐죠.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이다.” 정말 쉬운 정의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저도 아저씨도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대통령이 되면 본인을 원로로서 만날 수 있겠다며 웃으며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그 분이 어떻게 지내실지 괜스레 궁금해지네요. 한강에서 술 마시면 안 되지만 나름 사정이 있겠지 되뇌곤 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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