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가벼움과 무거움, 그 사이의 위태로운 탐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 (AI) 한 줄의 유혹:
"당신의 삶은 깃털처럼 가벼운가, 바위처럼 무거운가?" 억압된 시대 속에서 네 남녀가 그려낸 존재의 엇갈린 궤적
- 문장: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자, 이제 그만하자. 토마시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 출처: 361~362쪽 중에서
- 생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소련에 침공당한 체코슬로바키아를 배경으로 네 명의 주인공(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입니다. 소설은 철학적 사유가 곳곳에 배어 있고, 정돈된 작가의 해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벼움”이란 제목과 달리, 상징과 비유가 촘촘히 엮여 묵직한 여운을 줍니다.
토마시는 잘 나가는 외과 의사이자,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바람둥이입니다. 테레자는 불안정한 성장기를 겪었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카메라를 든 채 체코 내 소련 체제의 부조리를 기록한 사진작가입니다. 사비나는 토마시의 연인이자, 스위스 취리히로 망명 간 예술가이며, 프란츠는 사비나의 애인이자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반대해 캄보디아로 향하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토마시와 테레자의 관계에서, 토마시와 사비나, 다시 사비나와 프란츠로 교차합니다. 등장인물 간 관계 변화가 잦아 혼란을 느낀 저는 인물 정리를 할 겸 다른 독자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해석하였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많은 독자들은 토마시와 사비나는 ‘가벼운 존재’로, 테레자와 프란츠는 ‘무거운 존재’로 해석합니다. 가볍고 무겁고는 삶을 대하는지 태도에 따라 기준이 나뉘며 후반부에 나오는 '키치'라는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키치는 감상적이고 미학적인 이상으로, 야코프(스탈린 아들)의 똥과 대비됩니다. 똥은 지극히 유물론적이고 키치의 가치에서 본질적으로 수락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키치와 똥을 비교하면 키치는 감상적이나, 삶의 무게를 회피하고 똥은 추하나, 삶 그 자체가 됩니다.
시몽(토마시의 아들)과 마리클로드(프란츠의 정부)가 토마시와 프란츠의 묘비에 새긴 글귀는 각 인물의 방향성을 해석합니다. “그는 지상에서 하느님의 왕국을 원했다.”는 토마시가 거듭된 유랑에도 결국 이상이라는 일관된 방향을 추구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오랜 방황 끝의 귀환”은 프란츠는 정부(마리클로드)의 품을 떠나고 캄보디아로 향했지만 결국 환상이 깨져 회귀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아들(시몽)은 잊었으나, 테레자에게 헌신한 토마시. 시몽과 달리 어머니를 사랑하였지만 정부(마리클로드)를 버린 프란츠도 대조적입니다.
글을 읽으며 소설 속 인물들은 스스로 가볍거나 무거운 존재라고 판단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작가는 등장인물이 자기도 모르게 목표를 추구하고 그것에 가까워졌다고 말합니다. 일례로 사비나가 그렇습니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제네바를 떠나온 이래 그녀는 이 목표에 부쩍 가까워졌다.”
사비나가 “공산주의 만세”라는 동어반복에 내면적으로 저항하고 염증을 느끼며 체코를 벗어나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졌습니다. 사비나와 같은 가벼운 성향의 토마시는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기사를 쓰고(작위적으로 편집되기는 했지만) 외과 의사에서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가 되며 테레자와 농촌으로 내려간 무거운 존재로의 귀결이 그렇습니다.
저자 밀란 쿤데라는 주인공 네 사람의 여정에 함부로 비난하거나 칭찬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들을 투영합니다. 마치 이전에 작성한 <센스의 철학(지바 마사야)> 독후감 내용처럼 타인을 또 다른 나로서 평형 세계의 한 가능성으로 봅니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소설은 단지, “인간 삶을 찾는 탐사하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소설에 자기 생각을 담은 건 아님을 단호히 선언합니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책의 맨 마지막 부분, 토마시와 테레자를 위해 조금 더 애틋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저자 역시 체코 슬로바키아 태생에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인물이었고 전체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소련 공산주의에 저항한 인물로서 토마시와 테레자의 삶이 겉으로 보기에 슬픔으로 가득 차 보였지만, 슬픔이 속마저 가득 채우진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한 듯합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 명성에 걸맞게 사유의 깊이가 두텁고 여운 또한 가볍지 않은 작품입니다. 다른 독자분들의 해석과 비교하면 글이 빈약하거나, 미학적인 감상에 치우친 건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비나의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제목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뒤바뀌고, 제겐 “잘 참는 존재의 둔함”으로 남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글 마무리합니다.
(작성일: 2025.06.08.)
- (AI) 생각 한 줄 요약: 체코는 멀지만, 억압과 키치는 익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