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편집된 지식이 세상을 바꾼다, 바우하우스의 유산: 창조적 시선(김정운)
- (AI) 한 줄의 유혹:
"지식은 편집이다, 편집은 곧 창조다" 기능을 따르는 형태의 미학, 바우하우스가 남긴 창조적 태도에 대하여
- 문장: “유럽의 모든 아방가르드 지식이 이 작은 학교에 몰려들어 집중적으로 ‘편집’됐기 때문이다. 지식은 편집된다. 편집은 곧 창조다.”
- 출처: Unit 126. 바우하우스 양식, 1923년 ‘바우하우스 전시회’ 중에서
- 생각: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의 <창조적 시선>을 읽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심리학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통섭이 인상적인 책입니다. 그중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를 주축으로 얽힌 이야기는 마치 나무 뿌리처럼 끝없이 뻗어나갑니다.
바우하우스를 둘러싼 주요 인물*과 미술 사조**, 정치적 배경***은 바우하우스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 교장인 그로피우스에서 장인으로 근무한 이텐, 반 데어 로에, 두스부르흐, 칸딘스키 등
** 표현주의·낭만주의 탈피, 구축주의(재료 공정성) 수용, 기능주의 추구
*** 바우하우스를 폐교로 몰아간 1차, 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 정권
바우하우스의 정치적 배경을 살펴보면, 바우하우스를 폐교시킨 나치 정권의 만행은 유대인 학살과 함께 전체주의 정권의 문화, 예술 탄압을 떠올리게 해 섬뜩한 울림을 줍니다. (”책을 태우면 결국 사람도 태운다는 하이네의 비극 『알만조르Almansor, 1823』에서 따온 경고문) 특히 독일 프로이센 군국주의→일본 군국주의→식민지 조선으로 이어지는 착취 역사는 바우하우스와 식민지 조선이 공유하는 교집합을 보여줍니다.
해당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점은 다양한 요소를 한 데 어우르는 ‘통섭’, ‘편집’, ‘창조’가 바우하우스처럼 재능,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저자는 뮌헨 제체시온의 잡지(유겐트)를 설명하며 마쓰오카 세이고의 『지의 편집공학』을 인용합니다. 편집력’은 기자나 피디, 매체의 편집자만의 것이 아닌, 요리사, 아이 어머니를 비롯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또 “새롭게 편집하여 ‘표상’하고 그 새로운 편집 결과에 대한 개념, 즉 ‘메타언어’를 발전시키는 것이 창조성의 핵심이다.” 문장으로, 바우하우스를 포함한 수많은 편집자들이 편집 과정을 거쳐 결국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 의식’과 ‘자기성찰’이 필요하다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요즘 들어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심플한 디자인의 상품이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원형이 된 바우하우스를 이해하면 삶에도 ‘기능’에 초점을 두는 실용적인 태도를 기르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주의 미술의 ‘있는 그대로 그린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일까 묻는 유닛에서 가수 조영남 씨의 대작 사건을 언급합니다. 저자는 그가 감옥에 갔다면 현대미술에서 ‘대작’의 의미에 대한 심층적인 논쟁이 발생했을 텐데 무죄가 나와 아쉬워 합니다. KBS 교양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걸로 알고 있는데 조영남 씨가 이 부분을 읽으면 섭섭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작성일: 2025.02.23.)
- 생각: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의 <창조적 시선>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글을 작성할 시간이 나지 않아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짧게 공유해 봅니다.
독일 빌헬름 2세는 아래 그림의 스케치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른쪽 끄트머리, 익숙한 존재가 보입니다. 유럽인이 아시아 세력을 견제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그림에 있어 놀랐습니다.
작게 표현돼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강직한 좌식 자세에서 아우라마저 느껴집니다. (십자가의 후광과 달리 부처님 뒤에 표현된 후광은 굉장히 매워 보입니다(?))
최근 뉴스에서 불교가 종교 호감도가 높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았는데, 빌헬름 2세에게 부처는 알기 모르게 경계해야 하는 존재였나 봅니다.
(작성일: 2025.02.21.)
- (AI) 생각 한 줄 요약: 바우하우스에서 시작된 ‘창조의 편집력’은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실용적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태도임을 일깨우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