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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오랑주리 - 오르세미술관 특별전 : 세잔,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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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생각↓ 요약: 화풍의 대비를 통해 드러나는 두 인상주의자의 시선 철학
 
  • 생각: 오늘은 <오랑주리-오르세미술관 특별전 : 세잔, 르누아르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요즘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세종 문화회관의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전시회 등 다양한 전시회의 향연으로 기대감을 품고 있습니다.

    친구도 오늘 전시회 사진을 보고 국중박 다녀왔냐고 물을 정도니까요. 이번 전시회는 안타깝게도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전시를 보는 동안 느낀 감상과 호기심을 중심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전시회는 제목처럼 초기 인상주의 화가인 세잔과 르누아르, 두 명을 중심으로 작품이 구성돼 있습니다. 두 화가의 화풍은 물론, 삶도 함께 비교해 다르지만, 결국 다르지 않은 역설적인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1. 비교 감상: 세잔 & 르누아르

    1) <화가의 아들의 초상>·<놀이중인 클로드 르누아르>
    두 작품은 세잔과 르누아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한 작품의 요소가 다름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사실 아래 작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세잔은 자신의 아들인 폴 세잔을 그리지만 애정이 담겨있기보다 말 그대로 객관적으로 그립니다. 관람객의 시선이 편하도록 의자와 인물도 과감하게 잘라내 빈틈 없는 구도를 보여줍니다.

    반면 르누아르는 자신의 셋째 아들이자 막내 아들, 클로드 르누아르를 따뜻하고 친밀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장난감을 갖고 놀며 천진난만함이 드러나는 자연스런 이미지를 표현합니다. 심지어 아들임에도 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오해하기 좋습니다. (사실 저도 주위 관람객의 이야기로 알 수 있었습니다.)

    2) <짚 장식 꽃병, 설탕 그릇과 사과> · < 복숭아>
    세잔의 작품은 그 자체로 정물화의 모범입니다. 오롯이 구도에 집중에 전체 틀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반면 르누아르의 <복숭아>는 구도와는 다르게 전체적인 이미지, 색채에 집중합니다. 심지어 식탁 위 접힌 천의 그림자가 세밀히 그러져 있고 벽지는 착란을 일으키는 듯한 여러 빛깔로 그려져 있어 신비감을 줍니다.

    3) <푸른색 꽃병> · <꽃병 속의 꽃>
    두 작품에서도 각 화백이 주안점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세잔은 꽃과 사과, 벽이 수직 수평의 선들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꽃병에 그림자가 없어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건 설명 참고),

    세잔도 나름 색채에 신경 썼는지 푸른색 꽃병과 약간 붉은 사과의 대비가 눈에 띕니다. 하지만 정갈하게 정돈된 꽃의 모양은 구도를 흩트리지 못합니다. 반대로 르누아르의 <꽃병 속의 꽃>은 비대칭적으로 산발된 꽃 형태가 화사한 색채와 압도적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냄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2. 세잔의 작품을 보며 느낀 감상과 호기심

    1) < 세잔 부인의 초상>(1885~1895년) · <정원에 있는 세잔 부인의 초상>(1879년-1880년)
    두 작품을 비교하면 후에 그린 세잔 부인의 인상이 또렷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에 이전에 그린 정원에 있는 세잔 부인의 초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피곤해보이는 듯한 느낌일까요? 그런데 전시는 왜 연도 순서대로 두지 않고 역순으로 전시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니면 세잔이 보기에 그녀의 위엄이 더 커진 걸까요?

    (Gemini 참고)
    - 후기 초상화의 부인은 견고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세잔이 대상을 영원한 진리로 포착하려는 화풍 변화와 연결됨. 초기 초상화는 모델 역할이 강함.

    - 연대 역순 전시는 후기 양식의 완성도를 먼저 제시하여 시각적 충격을 주고, 세잔의 스타일 변화 과정을 명확한 대비로 보여주려는 전시 전략임.

    2) <붉은 바위>
    작업실이 아닌, 밖에 나가 그림을 그린 외광파 피사로를 따라 오래 전 문 닫은 엑상프로방스 채석장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의 푸른색, 바위의 붉은색, 나무의 초록색. 세 색깔의 구분은 구도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해당 장소는 세잔의 오랜 친구인 에밀 졸라와 함께 거닐던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시 마지막 연표에 에밀 졸라와 헤어졌다는 내용이 나오는데(”1886년 졸라와 세잔의 오랜 우정은 끝났다. 세잔은 4월에 오르탕스와 결혼했다.”) 그 사연이 문득 궁금해집니다.

    (Gemini 참고)
    - 졸라가 1886년 발표한 소설 《작품(L'Œuvre)》이 계기로 소설 속 실패한 화가 '클로드 랑티에'가 세잔 자신을 모델로 했다고 느껴 깊은 배신감과 상처를 받음. 졸라가 자신의 예술을 실패작으로 결론 지었다고 판단하여 1886년 이후 연락을 끊음.


    3. 르누아르 작품을 보며 느낀 감상과 호기심

    1) <정원에 있는 세잔 부인> · <푸른 꽃병 속의 꽃>
    세잔의 작품이지만, 두 작품에선 모두 여백이 남겨져 있습니다. 특히 1880년 세잔의 작품인 <꽃과 과일>에서도 꽃, 과일 외의 배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르누아르의 1892년 작품 <피아노 치는 소녀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백이 보입니다. 여기서 여백은 연습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결과였을까요?

    (Gemini 참고)
    - 세잔의 여백 : 캔버스의 흰색은 의도적인 회화 기법. 그림의 가장 밝은 색이자 색채 관계를 잡아주는 핵심 요소이며, 형태와 색채의 본질 탐구를 위한 '열린' 상태를 의미함.

    - 르누아르의 여백: 배경의 단순화나 흐릿한 처리는 인물(소녀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 인물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돋보이게 함.

    2) <두 소녀의 초상>(1890~1892년) · <피아노 치는 소녀들>(1892년)
    두 작품엔 두 소녀가 등장합니다. 두 작품을 비교해았을 때 왼쪽 소녀는 분명 같은 소녀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른쪽 소녀는 다른 소녀로 보여 호기심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두 작품의 소녀들은 동일 인물일까요?

    (Gemini 참고)
    - <두 소녀의 초상>과 <피아노 치는 소녀들>의 소녀들은 동일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음. 르누아르는 특정 모델에 구애받지 않고 여성적 우아함이라는 주제를 표현했음. 르누아르는 한 인물에 얽매이기보다 빛과 색채를 통한 여성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포착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

    3) <목욕하는 긴 머리의 여인>
    해당 작품은 르누아르 가 후기에 그린 누드화 중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여인 뒤의 이끼가 낀 듯한 옅은 초록색 배경은 시각적으로 편안함을 줍니다. 색채가 주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죠?

    4) <르누아르의 보송보송한 이끼 장미>
    이름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다가 문득 옆을 지나가던 관람객 분이 “’보송보송한’이라는 표현이 귀엽지 않아?”라는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습니다. 그제야 어느 전시회에서도 “보송보송한”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지 못한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끼 장미라는 식물도 처음 들어본 명칭이어서요. 지금 보니 솜이불처럼 보송보송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5) <배나무의 하늘>
    해당 작품은 배나무도 멋있지만, 그 뒤를 지나는 구름이 참 예쁩니다. 예쁨) 저도 메모에 감상을 왜 이렇게 적었지 하면서 검색엔진에 그림을 검색하는 중인데 적은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한 건 르누아르는 여인, 배나무 같은 주된 요소 외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는 배경까지도 섬세하게 신경 썼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4. 일생 연표 비교

    두 작가의 삶은 무척 달랐습니다. 폴 세잔은 1839년 부유한 모자 제조업자 아버지(후에 은행장) 아래 태어났고 르누아르는 1841년 재단사 집안 대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세잔은 법대를 다니다가 드로잉 수업을 들었습니다. 세잔과 르누아르 모두 살롱전에서 몇 차례 수상하지 못하는 고배를 마셨지만, 결국 먼저 입상한 사람은 1868년 ‘양산을 든 리즈’를 그린 르누아르였습니다. 하지만 세잔은 살롱전에 떨어지기 위해 심사위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법(두껍게 칠하기 등)으로 일부러 그렸다고 하니 어찌 보면 세잔 자신의 목적은 쟁취한 셈이겠네요.

    그들의 말년도 비슷해보이나, 조금은 다릅니다. 르누아르는 1905년 건강 악화돼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고 1912년 류머티즘 관절염과 손가락 변형으로 붓을 손에 묶어가면서까지 그림을 그립니다. 그렇지만 1919년 자신의 초상화 작품 ‘샤르팡티에 부인‘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라 카즈 전시실에 전시된 걸 보며 만족해했고 그해 12월 3일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반면에 세잔은 1904년 건강 악화(당뇨로 이미 안 좋음)를 껵고 1906년 폭풍우에 휩쓸려 페렴에 걸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여파로 결국 그 해 10월 22일 타계합니다. 세잔은 르누아르처럼 죽기 전 자신의 회고전을 보지 못했지만, 사후인 1907년 파리 살롱 도톤 전에서 그를 위한 대규모 회고전이 개최돼 그의 작품 56점이 소개됩니다. 이때 그에게 영향을 받은 피키소와 마티스 같은 화가들이 관람객으로 방문합니다.


    5. 피카소를 통해 배우는 후대인의 태도

    세잔과 르누아르를 받아들인 피카소의 이야기입니다. 전시회에서도 적혀 있듯, 피카소는 자신의 선배들인 세잔과 르누아르에 애정을 표합니다. 세잔의 영향을 받아 입체주의의 길을 향하지만, 르누아르의 작품도 기꺼이 배웁니다.

    실제로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실에 그들의 작품을 두었습니다. 남은 사진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 칸의 작품실 내부를 찍은 사진에서 세잔의 작품(다섯 명의 목욕하는 여인들, 1957년 소장)을 찾을 수 있고 르누아르 작품 7점도 소장해 모티프 삼고 창작 모델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특히, 르누아르의 후기 누드화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세잔(구도)과 르누아르(색채, 분위기), 작품을 그릴 때 주안점을 다른 곳에 둔 선배들에게서 장점을 고루 배운 피카소의 태도는 저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마지막 꿀팁 공유

    여러분들도 <오랑주리-오르세미술관 특별전 : 세잔, 르누아르 전시회>에 가신다면 비록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움이 크겠지만, 그 만큼 눈으로, 귀로 배우는 게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오북 잊지 말고 대여하시길(이어폰 포함 시 3,000원, 개인 이어폰 있으면 휴대폰 어플 활용해 2,000원)
 


(방문일: 2025.12.7.)
(작성일: 2025.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