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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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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한 줄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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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계몽의 굴레를 거부한 질풍노도의 감정과, 그 이면에 숨겨진 시민 계급의 사회적 좌절을 조명한 고전

 
  • 문장: 일꾼들이 관을 날랐습니다. 따라가는 성직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 출처: 204쪽 중에서
  • 생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습니다. 사실 해당 책은 업무 세미나 중 언급되었습니다. 발표하시는 분께서 이 책은 고전답게 본인을 포함해 누구도 안 읽었을 거라고 말씀하셔서 긁힌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분량도 적고 평소 일상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아 읽는 데 부담이 적습니다. 처음 읽 땐 목가적인 시골 풍경 묘사가 나와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또 아이들을 예찬하며(<마태복음> 18장 3절) 책에 대해 내가 선입견을 함부로 가졌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법무관의 딸 로테가 등장하면서 책의 분위기는 반전됩니다.

    그녀의 등장 이후 책 내용은 그녀를 향한 집착이 주를 이룹니다. 그녀의 약혼자인 알베르트도 나오지만, 베르테르는 그를 존경하면서도 로테에 대한 집착은 멈추지 않습니다. 책의 형식은 서간체, 편지글 형식입니다. 하지만 주인공 베르테르의 편지를 받은 그의 친구 빌헬름의 답장은 나오지 않습니다. (베르테르의 편지로 답장 내용 유추)

    책 후반부를 읽다보면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마음을 전하는 <오시안의 노래>를 낭독합니다. 그런데 <오시안의 노래>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많아 AI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요약하자면 콜마를 두고 콜마의 오빠와 대결해 오빠와 함께 죽은 연인 살가르, 악인 에라트에게 속아 물에 빠진 다우라를 그의 오빠 아린달이 구하지만, 아린달을 에라트로 착각해 그를 죽인 다우라의 연인 아르마르 이야기 입니다.

    두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베르테르가 로테와 알베르트라는 혼자만의 삼각관계를 두고 다른 마음을 먹었던 게 아닐까 액자식 구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책 말미, 베르테르와 친해진 나이든 하인이 자신의 고용인을 사모했으나, 고용인의 오빠가 자신을 해고하자 그를 죽인 사건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총부리는 결국 자신에게로 향했습니다만.

    인용 문장은 사단이 발생한 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처음 해당 문장을 읽었을 때 “왜 성직자가 아무도 안 따라갔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AI에 물으니 아래와 같이 답변하였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장례식에 성직자가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의 종교적·사회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살에 대한 종교적 금기: 작품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기독교(가톨릭 및 개신교) 사회에서는 자살을 '신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의 장례식에는 교회의 공식적인 의식이나 성직자의 참여를 엄격히 금지하거나 거부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사회적 질서와 통념의 반영: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편집자 노트」를 보면, 베르테르의 유해는 밤중에 일꾼들에 의해 보리수나무 아래에 묻혔고 성직자는 한 사람도 동행하지 않았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베르테르의 죽음이 사회적 규범과 질서를 어긴 것으로 간주되어 교회의 축복과 보호를 받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성직자의 불참은 베르테르의 비극적이고 고립된 최후를 강조하는 동시에, 당시 사회가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사회에서 자살은 금기시되고 죄악으로 여겨진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성직자가 마지막을 배웅하지 않았다는 구체적인 사실은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자살”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책이 작성되었는지 AI로 더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보았습니다.

Q. 베르테르의 슬픔은 합리주의·계몽주의의 반동인가요? 실업 문제도 있었나요?

A. 네, 맞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한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반동(Sturm und Drang, 질풍노도 운동)으로 평가받습니다.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 18세기 계몽주의는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이성보다는 감정, 열정, 주관적인 내면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겼으며, 이성적인 사회의 규범과 충돌하며 비극을 맞이합니다.

시민 계급의 실업과 한계: 당시 시민 계급(부르주아) 청년들은 실존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좌절을 겪고 있었습니다.

베르테르 역시 법률가로서 공직 사회에 진출하지만, 귀족 중심의 경직된 사회 구조와 관료제의 비합리성에 부딪혀 결국 사직하게 됩니다.

즉, 개인의 열정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는 당시 시민 계급의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와 실업(혹은 좌절된 직업적 성취)이 그의 우울과 무력감을 심화시킨 중요한 배경입니다.
 

18세기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도 일자리 문제가 배경이 되었다는 건 씁쓸함으로 남습니다. “질풍노도 운동”이라는 단어는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이라는 시대적 사명과 비교하면 “질풍노도 시기”처럼 약간의 오글거림이 느껴집니다.

이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단순히 한 여성을 향한 한 남자의 감정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도 읽을 수 있어 더 풍요롭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고 언급했지만, 분량도 많지 않으니 언제든 완독을 도전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작성일:2026.5.3.)

 
  • (AI) 생각 한 줄 요약: 베르테르의 비극적 최후가 지닌 사회·종교적 의미와 실업의 무게를 고찰하며, 낭만주의의 이면을 새롭게 발견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