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석영중 교수의 『백치』 강의(석영중)
- (AI) 한 줄의 유혹:
처참하게 파괴된 그리스도의 형상 너머로 기어코 불멸의 빛을 읽어내는 도스토옙스키적 응시
- 문장: 도스토옙스키가 무덤 속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한 것은 <신앙을 잃게 할지도 모르는> 죽음의 확실성이 아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죽음의 확실성 너머에 있는 불멸을 읽어 냈다.
- 출처: 395쪽 중에서
- 생각: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읽고 미뤄두었던 석영중 교수님의 『백치』 강의를 읽었습니다. 소설의 장면 장면마다 날카롭고 정교한 해석과 당시 러시아의 인문사회적 분위기를 담고 있어 소설만 읽었으면 놓쳤을 부분을 알차게 채워줍니다.
책은 철도-칼-그림이라는 세 가지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설을 해체합니다. 그 중 소설의 시작이자 미시킨과 로고진이 처음 만난 장소인 ‘기차’는 당시 물신주의 풍조를 야기한 철도(기계), 신기술 도입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갑작스런 개혁 개방으로 혼란을 겪는 러시아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알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책은 로고진 저택에 걸려있던 그림인 한스 홀바인2세의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주목합니다. 죽은 지 3일만에 환생했다고 전해지는 예수의 행방에 비해 그림 속 그리스도의 모습은 정말 환생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게 합니다. 이성의 육화, 강생으로 표현되기에 그의 모습은 너무도 사실적이고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석영중 교수님은 그림 속 그리스도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위 인용 문장으로 위로를 건넵니다. 스위스라는 천국에서 파블로프스크라는 지옥에서 백치가 되고 스위스로 돌아가지만, 이미 뇌 기능이 파괴된 미시킨, 미시킨이 자신을 구할 사람임을 알면서도 로고진에게 죽임 당할 수밖에 없었던 나스타시야는 예수와 마리아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결말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인용 문장은 이런 소설 내용을 향한 작은 위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주말이면 인근 공원 야산을 찾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산책로에서 빗자루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마치 스님처럼 산책로의 낙엽을 쓸어내곤 합니다. 절 마당에 풀 한 포기 없는 이유는 씨앗에 싹이 트기 전 빗자루로 쓸어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금 쓸다보면 나뭇잎이 내려앉아 있습니다. 쓸어도 쓸어도 끝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빗자루로 산책로를 쓸면서 마음은 편안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빗자루로 나뭇잎을 쓸어내다가도 새로 떨어진 나뭇잎을 보면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는 건 내가 막을 수 없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약간 포기하는 마음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오늘 어떤 분이 저를 빤히 보시더니 본인이 낙엽을 다 쓸어준 거냐며 복 받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별 일이 아님에도 기꺼이 좋은 말씀을 남겨주신 그 분께도 복이 따르기를)
소설 백치의 결말도 사실 체념과 포기, 허탈함을 줍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말씀처럼 「무덤 속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모습에서 무상함을 느끼기보다 죽음의 확실함 너머 ‘불멸’을 기어코 찾아낸다면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결코 두려워할 건 없다고 믿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아낀 소설 『백치』를 읽으신다면 석영중 교수님의 책으로 빈틈을 채워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작성일자: 2026.3.21.)
- (AI) 생각 한 줄 요약: 비극으로 점철된 소설의 잔상을 끝없는 낙엽 쓸기로 비워내며, 체념 너머의 평온과 불멸의 희망을 발견한 기록